오늘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시청역 주변을 둘러보려고 합니다.
시청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서울 5대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이 있죠. 그런데 덕수궁을 고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1897년에 건립되었으니 ‘근대도시궁궐’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던 덕수궁은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온 후 임시로 거처하다가 창덕궁 복원 후에 이거하면서 경운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이 이곳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기 시작했어요. 서양식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의지를 밝히기 위해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전인 석조전을 건축하기 시작했고, 중국과 동등한 황제국임을 보여주기 위해 전통양식의 정전인 중화전 건축도 시작하여 덕수궁은 유일하게 정전이 두 개인 궁궐이 되었죠.
그러나 헤이그밀사 파견으로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즉조당에서 즉위한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되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어 이름도 두 개가 되었습니다.
덕수궁은 정통성과 위엄을 갖춘 경복궁이나 아름다운 창덕궁과 비교하면 협소하긴 하지만 격동의 시기에 국가의 주권을 지키며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대한제국의 희망과 절망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시청 옆 고층 호텔 건물 사이에는 환구단이 남아 있는데, 시청광장의 일부도 원래는 덕수궁의 권역이었으니 아주 가까이에 환구단과 황궁우가 있었던 거죠. 고종은 바로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광무황제로 등극했으니 이곳도 대한제국의 간절함이 스며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조선총독부철도국이 철도호텔을 짓기 위해 1913년부터 공사를 시작하며 모두 훼손시키고 환구단만 남았습니다. 대한제국과 운명을 같이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곳은 그 이전에도 외세의 손을 많이 탔던 곳입니다.
래 이곳에는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가 출가해 거주하던 저택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소공주댁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이 지역을 소공동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이기도 하죠. 이후 이 저택은 선조가 아들인 의안군에게 200여 칸이나 되는 규모로 확장해 하사하여 남별궁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그러나 임진왜란시 한성을 점령한 적장 우키타는 남별궁에 머물렀다 퇴각한 후 명나라 장수인 이여송이 머무르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영조 1년(1725) 사신으로 왔던 청나라 아극돈도 남별궁에 머물렀는데, 그를 따라 왔던 화공이 그린 남별궁의 모습이 《봉사도(奉使圖)》에 남아 있어 당시 건물의 배치와 특징을 짐작할 수 있으니 참 재밌는 일이기도 하죠.
화재와 개발 등의 많은 부침을 겪으며 훼손되고 변형되었던 덕수궁은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함녕전 정문이었던 광명문은 올해 3월 1일에 제자리에 다시 섰고, 돈덕전, 선원전, 흥덕전, 흥복전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글쓴이 한애라님은
조각을 전공하고 미술계통의 일을 하다가 어느 날 역사에 빠져버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해 독립운동사를 전공하여 박사과정을 마쳤다.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찾아내 소개하는 걸 좋아하고, 일상이 담긴 생활사, 역사가 켜켜이 쌓인 도시사 등에도 관심이 많다.
서울특별시청 서소문 별관 정동전망대에 올라보세요.
-위치: 서소문청사 별관 1동 13층
-관람시간: 평일 09:00 - 21:00(연중개방)
-교통: 지하철 1, 2호선 12번 출구에서 3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