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 12일 서울시청 광장에는 3만여 명의 시민과 대통령 내외 그리고 서울시장 등이 참석한 지하철 1호선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지하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40여 년 만에 드디어 우리 손으로 첫 삽을 뜨게 된 것이라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기대와 감격이 가득했죠.
지하철이 개통되기로 한 1974년에는 새해 첫날부터 신문마다 《올해엔 지하철을 탑시다》, 《지하철 시대의 개막》 라는 기사로 시작해서 개통을 전후한 시기까지 지하철 요금, 운행시간, 안전수칙, 개편된 연계버스 노선 등의 정보와 안전수칙을 알려주었고, 주변 땅값이 오를 거라거나 아수라장과 같은 교통난이 완전히 해결될 거라는 등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소식들이 연일 보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온통 지하철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습니다.
사실 땅속을 달리는 놀라운 기차가 있다는 사실은 1900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1899년 황성신문에서 런던, 파리, 뉴욕 등 서양 대도시에는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다고 알려주었거든요. 그 후로도 서양의 지하철 소식이 전해졌지만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었죠.
1928년이 되자 서울에도 지하철 개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철도회사가 경성역-청량리역까지의 구간 중 경성역에서 동대문역 사이를 지하철로 부설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당시 여론은 이들이 이권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곱게 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서울이 확장되면서 인구 60만의 서울은 전차와 버스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교통난이 심각해졌습니다. 한껏 뽐을 내고 전차에 올랐던 모던보이와 모던걸도 내릴 때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고, 학생들은 입학난을 겪은 후엔 교통난을 겪게 된다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던 교통당국이 내놓은 묘안은 전차의 의자를 떼어내고 운행하는 것이었죠.
그러다가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는 피난시설로 지하철을 계획했지만 자재난으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죠.
해방이후 전쟁을 겪고 폐허가 된 서울시를 재건하는 계획에서도 지하철은 빠지지 않고 논의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꿈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죠. 예산과 자재도 없지만, 기술도 준비되지 않았을 때니까요. 그러나 60년대 들어서자 만 가지 곤란을 무릅쓰고라도 지하철은 부설되어야 한다고 다시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지하철 부설공사는 남대문과 동대문 등 문화재 보호 논란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종로 일대의 상인들과 이 일대를 통행해야만 하는 시민들의 불만도 컸습니다. 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해결하며 공사는 진행되었는데 시청역과 종각역 사이의 급커브 노선은 결국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 구간에 위치한 동아일보 사옥으로 인해 직각에 가깝게 노선이 설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뒤엔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더욱 난감했죠.
현재의 공법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당시엔 지상에서부터 땅을 파내려가 공사를 하던 시절이라 건물을 철거해야만 했으니 고심 끝에 결국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 시청역-종각역 사이 선로는 도로를 따라 90도에 가까운 커브가 되었는데, 이곳은 서울 지하철에 있는 곡선구간 중 회전반경이 가장 작은 곳입니다. 지금도 이 구간에서의 운행 속도는 약 30㎞/h 정도로 대단히 느려서, 1호선의 표준속도를 감소시키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답니다.
서울 지하철 개통을 하루 앞두고 모든 언론매체는 대중교통의 신기원을 기록할 대망의 지하철 개통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고, KBS 일일연속극 《꽃피는 팔도강산》에서는 개통 당일 방송될 내용에 지하철개통으로 벌어지는 촌극을 방영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11시 청량리역에서 열린 개통식에 박정희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10시에 있었던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영수여사가 피격되어 서거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청량리를 출발한 첫 지하철은 18분 만에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의 건설이 시작된 이후 서울 시내의 지하철 부설 공사는 그친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노선도 한 장만 있으면 서울의 웬만한 곳은 어디든 찾아 갈 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서울 곳곳을 누빌 수 있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역사유적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음 약속은 오늘 알아 본 서울 지하철 1호선의 시청역 2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해요.
조각을 전공하고 미술계통의 일을 하다가 어느 날 역사에 빠져버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해 독립운동사를 전공하여 박사과정을 마쳤다.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찾아내 소개하는 걸 좋아하고, 일상이 담긴 생활사, 역사가 켜켜이 쌓인 도시사 등에도 관심이 많다.